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이클 잭슨/사생활 및 일화 (문단 편집) == [[네버랜드 랜치]] == [[파일:neverland-700x329.jpg]] [[1988년]]부터 [[2005년]]까지 마이클 잭슨이 살았던 자택으로, [[캘리포니아 주]] [[산타바바라]]에 위치하고 있다. 사실 자택보다는 [[테마파크]]에 가까운 구조로, 놀이동산을 포함해 동물원, 영화관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넓은 부지 내에서 이동을 위해 기차와 기차역도 만들었다.[* 기차역은 1993년 하반기부터 공사를 시작해 1994년 최종 완공되었다.] 또한 녹음실과 댄스 스튜디오가 설치되어 있고, 마이클 잭슨은 생전 여기서 안무 연습과 앨범 작업을 했다. 2002년 발매된 콜라보 곡 [[What More Can I Give]]도 네버랜드 랜치에 있는 녹음실에서 작업한 것.[* 당시 [[저스틴 팀버레이크]], [[머라이어 캐리]], [[셀린 디옹]], [[브라이언 맥나잇]], [[리키 마틴]]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이 곳에서 녹음작업을 하는 모습은 뮤직비디오에 모두 삽입되었다.] 물론 정규/싱글 앨범 녹음 때는 외부 녹음실을 빌리는 경우도 많았다. 2000년대 초반까지 마이클 잭슨은 전 세계에서 여러 어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어린이들을 네버랜드로 초청해 같이 놀고, 식사를 제공하는 등 여러 행사를 하기도 했으며 매년 크리스마스 파티와 생일파티는 이 곳에서 진행되었다. 한 때 직원만 150명이 넘었을 정도로 위세가 어마어마했다. 단 엄청나게 높은 캘리포니아 주의 세금과 유지비용이 연간 500만 달러 이상 들 정도로 유지비에 많은 돈을 투자하였고, 아동 성추행 혐의로 피소됐을 당시에는 LA 경찰국에 의해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수모를 겪기도 한 장소였다. 2005년 6월, 마이클 잭슨은 2차 아동 성추행 혐의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바레인으로 떠났고 이후에는 사망할 때까지 단 한 차례도 네버랜드를 방문하지 않았다. 바레인, 아일랜드 등을 떠돌며 해외 생활을 하다 2006년 말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로스앤젤레스 근교에 따로 자택을 구입해 말년까지 살았다.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을 초청하여 영화 관람, 식사 등을 제공하던 행사도 성추행 사건 이후에는 모두 중단되었고 3~4년간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이어갔다. 잭슨이 네버랜드를 떠나고 이듬 해인 2006년,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네버랜드 랜치의 시설을 모두 폐쇄하도록 조치하였으며 2008년 마이클 잭슨이 소유권 일부를 자신이 합작해서 세운 회사인 콜로니 캐피털에 넘기면서 매각되었다. 마이클 잭슨 사후 11년 뒤인 2020년 미국의 억만장자 론 머클에게 재매각되었고 현재는 빈 공터로 남아있다. 마이클 잭슨이 사망한 뒤 시신이 이곳에 묻힐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으나, 오보로 밝혀졌다. 산타바바라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, 규정상 네버랜드 랜치 부지에 매장은 불가능하다고 한다. 잭슨의 시신은 LA 근교에 위치한 공동묘지 포레스트 론(Forest Lawn)에 안치되었다.[* 생전 절친이었던 [[엘리자베스 테일러]]와 같은 구역에 안장되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